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문단 편집) == 종교관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9px-Rembrandt_Harmensz._van_Rijn_048.jpg]] 《청년 예수의 얼굴》1648년 종교화를 그릴때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미켈란젤로]] 같은 화가들은 위풍당당한 모습에 백인의 외모, 거기에 후광(헤일로)까지 그려넣어서 일반인과 다르다는 걸 강조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이건 동시대가 아니라 한참 전 시대의 화가들과 비교한거라 미술사적으로 말이 안되는 비교다.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화가들이고 렘브란트는 바로크 화풍을 따른 화가다.] [[성경]] 인물 혹은 [[순교자]]들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나약한 듯한 모습으로 그릴 때가 많았다. 이는 위에서 말했다시피 렘브란트 자신이 [[개신교]] 신자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묘사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위 그림도 일반적인 [[예수]] 초상화와는 좀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인데 '''당시 지인이던 세파르딤 유대인 청년을 모델로 해서''' 그렸기 때문이다.[* [[http://www.thedailybeast.com/articles/2011/09/23/rembrandt-and-the-face-of-jesus-review-and-photos.html|참고기사]]] 다만 어머니가 [[가톨릭]]이었다는데서 알 수 있듯 단순히 화풍을 갖고 렘브란트를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 확신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게다가 렘브란트의 종교화 중에는 가톨릭 후원자들의 주문을 받아 그린 명백히 가톨릭 화풍의 그림들도 많기 때문에, 하나로 고정된 화풍으로만 그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안재경 목사가 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427762|렘브란트의 하나님]]이란 책에서는 그가 확실하게 개신교 신자인것처럼 서술해 놓았지만, 신빙성은 좀 낮다. 반면 김학철 교수가 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50618|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라는 책에서는 좀 더 객관적이고 학술적으로 서술되어 있으니 이쪽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는 그의 신앙관이 주류 칼뱅주의와는 좀 거리가 있다고 서술되어 있다. 일단 네덜란드의 국가 교회와 종종 충돌을 겪었던데다가, 그의 후원자 중에는 개신교도도 있고 가톨릭 신자도 있고 유대인도 있었다. 게다가 가톨릭 화가가 스승이다.(렘브란트의 종교관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Perlove, Rembrandt's Faith: Church and Temple in the Dutch Golden Age, 2009 참고) 그가 활동했던 16세기 네덜란드에서 미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화가들은 거의 가톨릭 신자가 많았다. 바로크 미술이 가톨릭 내부의 종교개혁에서 유래한 화풍이기 때문이다. 단지 상업국가라 실용주의 성향이 강했던 네덜란드에서는 개신교 후원자들이나 가톨릭 후원자들을 막론하고 그림을 주문할때 화가의 종교를 딱히 따지지 않는 경향이 강했을 뿐이다. 게다가 둘째 결혼을 할 때 원래 연인이랑 약혼까지 한 상태에서 다른 여자랑 눈이 맞아 파기하곤 위자료 책임지기 싫다는 이유로 상대 가족을 매수해 정신병원에 보내버리는 등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짓을 했던 점들을 볼 때, 그가 신앙적으로도 독실했다 보긴 힘들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